책에 대해 끼적거림

완전한 타인, 이주혜『자두』

블루스타킹♪2020. 10. 14. 18:50


이주혜의 소설 자두의 한 장면.
가부장제 안에서 소설 속 주인공이 '우리'안에 속하지 못함을 깨닫는 장면이다.

원래 클라이맥스에는 이렇든 저렇든 감정적 해소를 느끼는 편인데 이 소설에서는 도리어 이 부분에서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함을 느꼈다.


예전에 결혼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는 비교적 남녀차별 없는 가정에서 나고 자랐는데
결혼 후 시댁에서 가족상을 차리다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남자들 상과 여자들 상이 따로였고 남자들부터 식사를 하더라했다.

나는 그 이야길 듣고도 우리 외가 친가도 그러하다며

아직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집들은 그렇다 별스럽지 않은 일이라 말했다.
내 맘은 친구가 부디 가벼이 일을 넘기어 마음이 덜 언짢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아직 잘 모르겠다.
이렇게 불편하고 불공평한 것들을 입 밖으로 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나아질지 말이다.
위에 나의 반응은 달라질 것 없으니 적응하자는 체념이 아니었나.
이상하게 결혼만 하면 '우리'에 속하지 못하는 '우리'들이라지.



담장 너머 따먹지 못할 탐스러운 자두였다가
한입 베어 물면 피처럼 뚝뚝 과즙이 흐르는 욕망이었다가
떨어지면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처참해지고 마는,
시큰달큰한 냄새가 저녁 어스름에 몸을 켜켜이 숨기는

그런 자두.


우리 외가댁에도 수십 년 동안 대가족을 먹이고도 남도록 많은 열매를 내어준 자두나무가 있었더랬지.
그래서 더욱 소설 속 이미지와 나의 경험적 이미지가 섞여
어떤 심상을 만들어내었다.

그 고목은 이제 수를 다하고 마르기만 하여서 베어졌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자두나무 몇 생을 돌아야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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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끼적거림이 누군가에겐 피안의 세계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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