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끼적거림

쏘와 함께한 하루.

블루스타킹♪2020. 11. 3. 15:46

 

대학시절부터 쭉 친하게 잘 지낸 친구가 있다.

이름이 예뻐서 항상 풀 네임을 부르지만 여기선 편의상 쏘라고 해야겠다.

쏘는 나보다 한 살 어린 한 학번 아래 후배이다.

2006년도에 그 애가 입학하고 술자리에서 W의 소개로 처음 만났는데,

우리는 처음 보자마자 무척 친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설렘 덕분에 상기되어 기분 좋게 잠을 설쳤다.

(친구와 처음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다니 참 애틋하군 ㅋ)

 

글을 쓰는 우리 과에는

정규 과정 외에도 따로 학회라는 소모임 활동이 있었다.

그 활동이 우리들에게는

'학교에선 이러저러한 것을 배우지만 난 사실 이게 쓰고 싶어.'

라는 정체성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쓰는 영상 작가가 꿈이었던 나는 당연히 시나리오를 쓰는 학회에 들어왔고,

쏘도 다음해에, 그러니까 입학 후 바로 우리 학회에 들어왔다.

 

학회 세미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목요일 저녁 6시쯤부터 두 시간 정도 열렸다.

공강의실에 모여 돌아가며 단편 시나리오를 합평하고 끝나면 마셨다.

 

학교생활은 으례 예술학부 아이들이 그렇듯

술, 술, 술이었다.

알쓰인 나도 오기로 마시며 술자리를 늦게까지 지켰다.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마셨느냐 하면

글쟁이들이 으레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유명한 작가인 교수님이나 그 밑에서 먼저 수학한 선배들이

쏟아내는 이야기 속에 하나라도 더 배울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글쟁이들이 하는 이야기들이라 엄청 재밌었다.

그 자리에 쏘가 있고 내가 있었다.

 

우리는 재미있게 읽은 텍스트,

과에 떠도는 소문, 사건, 사고 

연애 얘기, 가족 얘기.
영화 이야기 꿈 이야기 무엇이든 이야기했다.

슬퍼도 재밌고

외로워도 재밌고

할 이야기가 없어도 재밌고

재미가 없어도 재미있었던 시간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그때로부터 훌쩍 떠나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만나면 스무 살 남짓의 우리가 되어 수다를 떤다.

그 애의 말마따나 

그냥 뭘 안 해도 편안하고 재밌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둘 다 글 쓰는 것보다

공들여 쌓아 놓은 삶에 더 집중하고 있는데

그도 또 그런대로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늘 이렇게 쓰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등단을 못해서, 책을 못 내서 안달하지 않는다.

동창 중에는 작가나 평론가가 된 사람들이 꽤 있지만

그네는 그의 시간이 우리는 우리의 시간이 흐르는 것뿐이다.

 

요즘 우리는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올린다.

생각해보면 학교 졸업 후 쏘의 글을 이렇게 자주 읽어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쏘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맛있는 초콜릿 아껴서 꼭 먹고 싶을 때 꺼내먹듯

출근해서 아침 환자가 한번 지나가고 난 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에 그녀의 글을 읽는다. 

아주 행복한 시간이다.

 

엊그젠 쏘랑 오랜만에 만나

좋아하는 양고기를 먹고

대학시절 먹던 술집 느낌과 아주 비슷한 동네 호프집에서 한잔 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다.

 

오빠가 사고 내가 고른 DSLR 카메라.

유튜브를 위해 샀는데

기계치인 오빠는 손도 잘 안 댄다.

카메라랑 친해질 겸 사진도 많이 찍어줄 겸 들고 나왔다.

예쁜 사진이 많은데 

언니 안돼요!! ㅋㅋㅋㅋ 할 거 같아서 얼굴 가린 사진만 올려야지.

 

 

 

집에 돌아와 사진 색보정을 하면서

"아유~~ 우리 쏘 예쁘네~~ 누가 애기엄마로 보겠어."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오빠가 지나가다 그런다.

친한 동생이라 하는 소린줄 알았는데 정말 앳되고 예쁘고 즐거워 보인다고.

ㅋㅋㅋㅋㅋㅋㅋ

객관적으로 인정받으니 기뻤다. 내 눈에만 예쁜게 아니라고! ㅋㅋㅋㅋㅋ

 

 

사진이란게 그냥 보이는 이미지를 찍어내는 게 아니라

내가 포착하고 싶은 모습을 담나보다.

이런 건 내 눈으로 밖에 못 담는 모습이니까

기회가 될 때마다 많이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

 

그러니 나에게 초상권을 허락해 주겠늬?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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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끼적거림

나무의 얼굴.

블루스타킹♪2020. 10. 28. 11:51



나무를 구경하며 걷다가
새삼 몸통 부분이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무마다 매우 다르다는 걸 알게됐다.

아마 나무의 얼굴이 있다면
이 부분이 아닐까 싶어
남겨 본 사진.




아. 얘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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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블루스타킹♪2020. 10. 10. 09:13



가을 아침
걸어서 출근하며 담아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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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 ( 연복자)

블루스타킹♪2020. 9. 28. 11:34

 

 

같은 층 한의원 원장님께서 

원장님이랑 하나씩 나눠 먹어요~ 하고 

요상한 과일을 주셨다.

 

이름이 으름이란다. (묘하게 라임이 붙네)

약재 이름으로는

열매는 연복자, 줄기 덩굴은 목통

 

 

먹기 전에 찍었어야 했는데 신기해서 일단 한입 먹어봤다.

처음 먹어보는데

낯설지 않은 맛.

 

푹 익은 바나나 맛 같기도,

새콤함이 빠진 무화과 맛 같기도 하다.

 

씨는 맛없으니 버리라는데

씨가 산조인보다 약간 작은 것 같다.

과육보다 씨가 더 많음 ㅋㅋㅋ

 

항염, 이뇨 작용에 탁월하다고 한다.

일부러 반 잘라서 먹기 좋게 주신 줄 알았더니

다 익으면 이렇게 탁 벌어진다고 한다.

 

https://blog.naver.com/khjshh/221476096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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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끼적거림

결혼과 장례 그 사이.

블루스타킹♪2020. 9. 16. 16:53

 

일주일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이때껏 인연을 이어온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최근에 책상 서랍 정리를 해보니 그녀와 주고받은 편지가 참 많았다.

똑똑하고 글도 잘 쓰고 재주가 많은 친구다.

코로나로 인해 어렵게 식을 올렸다.

같이 마음 졸이며 걱정했는데 다행히 식은 잘 치러졌다.

 

 

 

 

 

 

 

나는 저 헬륨 풍선을,

또 다른 친구는 LED 전광판을 만들어와서

신부대기실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놀았다.

 

그런데 신부를 포함 코로나 예식은 처음이기에 아무도 그다음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입장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인을 받고 친구는 식장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입장 제한을 당했다.

아.. 49명...

 

대기실이나 홀에서 주로 인사를 나누고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한 친구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선착순 49명에 들지 못해서 식 장안에 못 들어가고 말았다.

 

"저희는 부케 받아야 하는데요? ㅠㅠ" 

"이따 불러드릴게요. 지금은 못 들어갑니다. 지하로 내려가세요."

 

 

이건뭐 어쩔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높은 힐을 신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식당에서 스크린으로 식을 봤다. 

 

 

 

 

 

 

 

아..

안 보이고 안 들려 ㅠㅠㅠㅠㅠ

 

 

식당 공간이라 몇 사람만 떠들어도 웅웅거려서 

제대로 식을 보지 못했다.

우린 오늘 사진 찍으러 왔는가 봄 ㅋㅋ

남은 친구들끼리 허허 웃으며 섭섭한 마음을 달래 본다.

 

 

아침부터 풍선 사고 바람 넣고 시 너머까지 운송해오고

땀을 한바탕 쏟았더니

배가 너무 고파졌다.

친구 어므니가 밥 사 먹으라고 주신 용돈으로 참치 머그러 꼬고.

 

 

 

 

 

 

얘,

자고로 맛집을 찾을 땐

리뷰 목록 한 페이지에 뜨는 글들 정도는 정독하고 와야 예의 아니겠늬????

 

너 좀 배운 사람이구나???

 

 

이런 대화를 하며 고대했던 참치회를 먹고

먹고,,

또 먹고,

참치 껍질 젓갈을 먹어야 하니 

밥도 달라하고

초밥이 맛있었으니 초밥도 리필하고

배찢..

내상을 입었다.

근데 이 근처에 또 유명한 베이커리가 있대.

그럼 커피 마시러 가야지 커피배는 따로 있으니깐

빵은 조금만 사가자.

 

하지만 그 빵집은 소진이 되었던지 문을 일찍 닫았고

맞은편 빵집 가서 빵 플렉스를 한 뒤

테라스에 앉아 마스크를 벗었다.

 

 

 

 

 

 

 

 

 

 

이 집 사진 잘 나오네 ㅋㅋ

빵은 쏘쏘였지만 사진을 잘 건진 우리는 만족했다.

 

 

 

 

그리고 이튿날,

부케 받은 친구의 강아지가 천국으로 길을 떠났다.

구르미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서 그런지 항상 우리 눈에 애기였고

친구 안부를 물을 때면 항상 같이 세트로 따라오는

마스코트 같은 강아지였다.

 

노견인 데다 암이 많이 퍼진 상태라 우리 모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소식을 들으니 많이 슬펐다.

 

마냥 어린애들처럼 놀던 우리가 시집을 가고

구름이도 떠나고

 

뭔가 한 시절이 이렇게 

책의 한 챕터처럼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직장에선 휴지로 눈을 연신 찍어가며

울음을 꾹 참다가

애인에게 SOS를 친다.

 

허하다 허해.

삼계탕 집으로 나와.

 

 

 

 

 

 

 

 

속이 뜨끈하게 덥혀지는 인삼주 한잔하고,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냐면....

...

 

 

 

 

 

 

뜨끈한 들깨 국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떠나간 강아지에 대한 그리움도

나 빼고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상념도

검은 내장 속으로 쓱쓱 넘겨버린다.

 

 

그래, 오늘 하루도 잘 견뎌냈다.

 

 

 


견딘다는 것은 몇 개의 호주머니를 바꾸는 것

어깨 위로 태양은 남은 발자국을 버리고 쓸쓸하게 사라진다네

살아서 훌륭했고

죽어서 더 훌륭해진 양장본들의 서가에

내려앉는 한 줌의 먼지

고귀한 먼지들이여 더 고귀해지거라

 

나는 하룻밤 장황한 꿈에 

일생의 판돈을 걸듯

수집할 한 권의 책을 기다리는 거라네

 

김경인 시집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 수집가 K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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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끼적거림이 누군가에겐 피안의 세계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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