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세월을 끼적거림

복수할 권리와 복수심을 가질 권리.

블루스타킹♪2016. 12. 14. 17:14

 

 

 

시절이 시절인만큼 어떻게 하면 시대의 아픔을 잘 봉합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그러던 중에 현대 사회에 산적한 문제를 전통사회에서 해법을 찾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어제까지의 세계] 라는 책을 만났다. 행간에서 희망을 찾으며 더듬적 아껴 읽고 있다. 그러다 마음에 깊이 와닿는 챕터를 만났다.

현대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복수의 갈망이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 감정에서 복수심은 우리가 끊임없이 입에 올리는 사랑과 분노, 슬픔과 두려움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 현대 국가 사회는 우리에게 사랑과 분노, 슬픔과 두려움이란 감정을 마음껏 표현해도 좋다고 허락하고 권장까지 하지만 복수심의 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복수심이 원시적이고 부끄러운 감정이므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감정이라고 배우며 자란다. 우리가 개인적인 복수를 획책하려는 마음을 꺾어놓으려고 우리 사회는 그런 믿음을 어린시절부터 심어준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복수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따라서 징벌의 권한을 국가에게 맡기지 않으면, 같은 나라의 시민으로서 평화롭게 공존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대부분의 비국가 사회처럼 끝없는 전쟁에 시달리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 국가가 죗값을 치르게 하는 문명 사회에서도 개인적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 예컨대 강도들에게 누이를 잃은 내 친구 하나는 국가가 강도들을 체포해서 법정에 세우고 감옥까지 보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분한 마음을 씻지 못하고 있다.

  국가 사회 시민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인정하기 힘든 굴레에 묶여 지낸다. 징벌권의 국가 독점은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그런 이점을 얻는 대신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

  국가 사회와 종교와 도덕률은 우리에게 징벌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복수는 나쁜 것이란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그러나 복수심에 사로잡힌 행동은 억제하더라도 복수심이란 감정을 인정하는 분위기는 허용되고 권장돼야 한다.

 

 

 

  오늘날 서구의 국가 사회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도덕률을 배우며 성장한다. 더구나 그런 도덕률은 교회와 성당에서 매주 설교되고 법으로도 성문화됐다. 여섯 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간단히 말할 뿐이다. 자국민과 타국민을 구분하지 않는다. 적어도 18년동안 이런 도덕 교육을 받은 청년들을 끌어모아 군인으로 훈련시키고 총을 쥐어주면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가르쳤던 과거의 모든 교육을 이제부터는 완전히 잊으라고 명령한다.

  따라서 많은 군인이 전투에 참전해서 적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적을 살해한 군인들이 오랫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미국의 약 1/3).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서 적을 죽였다고 자랑하기는커녕 악몽에 시달리고, 전쟁에 관련된 얘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참전군인들에게만 당시의 얘기를 조심스레 털어놓을 뿐이다.

  반면에 전통 사회에서 살던 뉴기니 사람들은 어린시절부터 전사들이 전쟁터를 오가는 것을 보며 자랐고, 적에게 죽은 친척과 씨족원의 시신과 상처를 보았다. 또한 적을 어떻게 죽였고, 전투를 최상의 이상인 양 말하는 얘기도 귀가 닳도록 들었으며, 용맹한 전사가 적을 죽이던 상황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그 행위로 찬양받는 모습을 보았다. ... 물론 뉴기니 사람들은 적을 죽였다고 마음의 갈등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잊어야 할 모순된 가르침이 애초부터 없다.

 

  복수심은 바람직한 감정이 아니지만 묵살해버릴 감정도 아니다. 복수심은 이해되고 인정받고, 실제의 복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소돼야 한다.

​광장에 나갔을때 하나 느낀것이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 매우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함성은 청와대라는 과녁으로 집중되어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사실 ㅂㄱㅎ 한사람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불편함을 무릎쓰고 그곳에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대변하지 못했다. 정부부처는 잘살게 해준다고 뻥쳐놓고 빚만 늘려놨다. 우리는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호위호식했던 특정인들, 또 그런게 가능했던 시스템에 대한 분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월호사건으로 유가족뿐 아니라 많은 국민은 슬픔을 맛봤지만, 그 상처를 봉합해야 할 사람들은 유가족을 무관심의 영역으로 내팽겨 쳤고, 국민들이 서로 의지하지 못하도록 분열을 조장했다. ​

우리 민주주의는, 우리 국민들의 상처는 수년째 헤집어 놓는 사람만 있을 뿐 치유되지 않았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말대로 국가사회는 우리에게 복수할 권리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복수심은 정당하게 해소가 되어야 한다.

단언컨대 이것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한반도 역사에 더이상 발전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국가의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이 눈물짓는 사회에서 사랑, 단합, 평화같은 것을 논의할 수 있을까?

이 와중에도 언론들은 앞다투어 누군가는 참여자의 머릿수를 헤아리고, 대통령이 버틸시에 경제적 외교적 불이익과 앞으로 몇년 뒤에 인구절벽이 올 것이고, 블라블라.. 떠들어댄다.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데 지표가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숫자에 매이면 우리는 또 그 저렴한 돈의 논리에 다시 물려들어  개인의 권리는 다시금 묵살되는 것 아닐까?

만약 우리 집에 불이나서 가족이 다 죽었는데 주변에서 위로랍시고

 너 얼마치의 재산을 잃었구나? 안됐다. 하지만 넌 앞으로 몇십년간 잉여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튼튼한 몸을 가졌기에 희망을 가져야해. 라고 말한다면 그 입에 죽빵을 날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임자리에서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 언론들에게 너무 관대하다.

​왜 천박하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불쌍한 우리는 그런 말도 꺼내기 어렵도록 국가에 너무 잘 길들여진 개돼지인지도 모른다.

두어달 전에 우연히 CNN을 틀었다가 911테러 추도식을 보게 되었다. 십여년전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그 일을 잊지 않은 많은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유력대선 후보였던 힐러리도 그자리에 참가해 휘청하면서 건강이상설 의혹이 커졌던 걸로 안다. 어쨌든 거기에는 위로가 있었다. 나는 지구반대편 내 방에서 작은 티비로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지만 숙연한 마음으로 그 날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희생된 사람들을 위해 슬퍼하게 됐고, 희생자 가족들이 올라와 입술을 꽉 물며 죽은이가 살아 생전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던지를 연설할 때 마음으로나마 위로를 보내줬다. 

상처가 생기면 이물질을 제거하고 소독부터하듯이.

먼저해야 할것이 있다면 복수심을 인정하고 위로부터 건네야한다. 그것은 나를 위하기도 하고 너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부디 억울하다 슬프다 복수심이 든다는 말들을 얼마든지 꺼내고 들어줄 수 있는,

인간다움이 너무 쉽게 격하되는 일이 없는​,

그런 성숙한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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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기의 시초

블루스타킹♪2016. 7. 16. 14:30


가끔 누가 묻는다.

왜 글쓰는 것 그만두고 돈벌기를 시작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요.

그네들이 원하는 상투적인 대답을 해주면 아,역시 라는 표정, 내가 알고 있는 믿음을 확인받았다는 표정을 보여준다.



헌데 내가 본격적 사회적 노동, 그러니까 입에 풀칠하기 위한 돈벌이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한문장으로 표현되기는 좀 부족한 것 같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꽤 오랫동안 이어진 탓이다. 종일 밑빠지게 일해서 한달만에 목돈을 쥐는 월급쟁이 생활은, 정신노동만 새가 빠지게 하고 푼돈 만지기도 어려운 시절보다 훨씬 달콤했다. 그러나 달콤하다고 디저트를 삼시세끼 먹을 수 없듯이 그 이유 하나는 개고생을 꾹 참게하는 동력이 되지는 않았다.


도서관에 앉아 줄창 읽고 쓰던 시절. 88만원 세대라며 청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비관할때, 같이 욕하면서 헬조선을 외치다가 문득
난 88만원도 못번다는 것을 깨닫고는
헬조선 외칠 자격도 없는 불가촉천민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불가촉천민이 쓴 글은 88만원세대도 밥버러지라고 외면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88만원 세대 안에 안착해서 같이 기성세대를 시팔저팔 좆같다고 욕하고 싶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욕할 시간이 없어졌다. 나는 돈버는 벙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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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블루스타킹♪2016. 7. 15. 10:09

 

 

 

줄곧 같은 악몽을 꾼다. 얼굴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쫓기는 꿈. 평범한 꿈을 꾸다가도 느낌이 싸해서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얼굴이 지워진 그가 쫓아오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내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헉헉대면서 뛰고 또 숨었다. 제대로 도망가서 남자를 따돌리는 일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코 앞까지 그림자가 다가와 거의 들킬만한 순간에 진저리를 치며 잠에서 깨면 어찌나 몸에 힘을 빡 주고 있는지, 땀은 또 어찌나 쏟고 있는지. 꿈이었다 하는 안도감은 금세 사그라들고 짜증이 밀려왔다. 이마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를 거칠게 쳐내며 일어났다.

 

 

꿈 속 내내 그토록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뛰어다녔으면서도 깨어나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굳은 근육을 꼼지락거리며 펴줬다.  어디론가 전화해서

 

나 지금 엄청 무섭고 짜증이 난다! 

 

고 알려서 푸르스름한 새벽의 산통을 깨고도 싶었다.

숨소리도 좀 고르게 되고 어둠에 눈이 적응이 돼서 시계를 보았다. 애매한 시간. 일어나기에는 많이 이르고 다시 자기엔 촉박한 시간인 것은 늘 변함이 없다. 다시 자면 같은 꿈을 이어 꾸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출근해서 고통스럽게 졸린게 더 무서웠으므로 억지로 비척비척 젖은 잠자리로 다시 들어갔다. 사회계약관계로 묶여있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에는 절대로 졸린 머리를 푹신한 무엇에 댈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비참한 것은 악몽보다 더 두려운 공포이다. 하루종일 손을 쓰는 일을 하느라 등 근육이 항상 아프다. 앉아서 혹은 서서 졸다보면 근육이 더 많이 아프다. 고통스러움이 예상되면 그것도 공포스럽다. 

 

넌 참 무서운 것도 많다

 

무심히 던진 애인의 말이 떠올랐다가 눅진하게 베갯잎 사이로 사라진다.

아침햇빛이 야금야금 창문을 물들이고 있는 것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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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끼적거림이 누군가에겐 피안의 세계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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