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끼적거림

결혼과 장례 그 사이.

블루스타킹♪2020. 9. 16. 16:53

 

일주일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이때껏 인연을 이어온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다.

최근에 책상 서랍 정리를 해보니 그녀와 주고받은 편지가 참 많았다.

똑똑하고 글도 잘 쓰고 재주가 많은 친구다.

코로나로 인해 어렵게 식을 올렸다.

같이 마음 졸이며 걱정했는데 다행히 식은 잘 치러졌다.

 

 

 

 

 

 

 

나는 저 헬륨 풍선을,

또 다른 친구는 LED 전광판을 만들어와서

신부대기실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놀았다.

 

그런데 신부를 포함 코로나 예식은 처음이기에 아무도 그다음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입장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인을 받고 친구는 식장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입장 제한을 당했다.

아.. 49명...

 

대기실이나 홀에서 주로 인사를 나누고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친척이나 친한 친구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선착순 49명에 들지 못해서 식 장안에 못 들어가고 말았다.

 

"저희는 부케 받아야 하는데요? ㅠㅠ" 

"이따 불러드릴게요. 지금은 못 들어갑니다. 지하로 내려가세요."

 

 

이건뭐 어쩔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높은 힐을 신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식당에서 스크린으로 식을 봤다. 

 

 

 

 

 

 

 

아..

안 보이고 안 들려 ㅠㅠㅠㅠㅠ

 

 

식당 공간이라 몇 사람만 떠들어도 웅웅거려서 

제대로 식을 보지 못했다.

우린 오늘 사진 찍으러 왔는가 봄 ㅋㅋ

남은 친구들끼리 허허 웃으며 섭섭한 마음을 달래 본다.

 

 

아침부터 풍선 사고 바람 넣고 시 너머까지 운송해오고

땀을 한바탕 쏟았더니

배가 너무 고파졌다.

친구 어므니가 밥 사 먹으라고 주신 용돈으로 참치 머그러 꼬고.

 

 

 

 

 

 

얘,

자고로 맛집을 찾을 땐

리뷰 목록 한 페이지에 뜨는 글들 정도는 정독하고 와야 예의 아니겠늬????

 

너 좀 배운 사람이구나???

 

 

이런 대화를 하며 고대했던 참치회를 먹고

먹고,,

또 먹고,

참치 껍질 젓갈을 먹어야 하니 

밥도 달라하고

초밥이 맛있었으니 초밥도 리필하고

배찢..

내상을 입었다.

근데 이 근처에 또 유명한 베이커리가 있대.

그럼 커피 마시러 가야지 커피배는 따로 있으니깐

빵은 조금만 사가자.

 

하지만 그 빵집은 소진이 되었던지 문을 일찍 닫았고

맞은편 빵집 가서 빵 플렉스를 한 뒤

테라스에 앉아 마스크를 벗었다.

 

 

 

 

 

 

 

 

 

 

이 집 사진 잘 나오네 ㅋㅋ

빵은 쏘쏘였지만 사진을 잘 건진 우리는 만족했다.

 

 

 

 

그리고 이튿날,

부케 받은 친구의 강아지가 천국으로 길을 떠났다.

구르미는 어린 시절부터 보아서 그런지 항상 우리 눈에 애기였고

친구 안부를 물을 때면 항상 같이 세트로 따라오는

마스코트 같은 강아지였다.

 

노견인 데다 암이 많이 퍼진 상태라 우리 모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소식을 들으니 많이 슬펐다.

 

마냥 어린애들처럼 놀던 우리가 시집을 가고

구름이도 떠나고

 

뭔가 한 시절이 이렇게 

책의 한 챕터처럼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직장에선 휴지로 눈을 연신 찍어가며

울음을 꾹 참다가

애인에게 SOS를 친다.

 

허하다 허해.

삼계탕 집으로 나와.

 

 

 

 

 

 

 

 

속이 뜨끈하게 덥혀지는 인삼주 한잔하고,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있었냐면....

...

 

 

 

 

 

 

뜨끈한 들깨 국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떠나간 강아지에 대한 그리움도

나 빼고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상념도

검은 내장 속으로 쓱쓱 넘겨버린다.

 

 

그래, 오늘 하루도 잘 견뎌냈다.

 

 

 


견딘다는 것은 몇 개의 호주머니를 바꾸는 것

어깨 위로 태양은 남은 발자국을 버리고 쓸쓸하게 사라진다네

살아서 훌륭했고

죽어서 더 훌륭해진 양장본들의 서가에

내려앉는 한 줌의 먼지

고귀한 먼지들이여 더 고귀해지거라

 

나는 하룻밤 장황한 꿈에 

일생의 판돈을 걸듯

수집할 한 권의 책을 기다리는 거라네

 

김경인 시집 『일부러 틀리게 진심으로』

- 수집가 K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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