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끼적거림

사티수행과 나

블루스타킹♪2019. 1. 9. 17:27

 

 

 

 

 

새해를 김해 사띠아라마 불교 사원에서 수행하며 맞았다. 매일 두시간씩 네 번씩 빠듯한 수행이 이어졌다. 걷는 행념, 앉아서 하는 좌념, 일상생활에서 하는 생활념을 배웠다. 스님이 하라는대로 따라하면서도 겨우 이런 것을 배우러 돈과 시간을 써가며 왔단 말이야? 생각이 들었다. 수행은 너무나 간단했다. 먼저 알아차림하고 행동을 하는 것. 그러니 걸음은 더딜 수밖에 없고 밥먹는 시간은 평소에 두 세배가 걸렸다.

일어남 사라짐, 들어 앞으로 놓음, 들어올리려고함, 들어, 앞으로감, 앞으로, 높으려함, 놓음, 누름.. 주문같은 단어들은 외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보니 불현듯 아 인생이 이런 것이구나 깨달음을 얻었다.

불행도 행복도 내 인생 전체에서 보면 찰나에 일어나고 흩어지는 것이었다. 행복도 오래 누릴 것처럼 집착하고 불행한 사건은 평생갈 것처럼 마음에 오래 담아두는 것이 모든 번뇌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집착하는 마음들을 들어올려 발을 내려놓으면서 같이 바닥에 내려놓고는 꾹 눌렀다. 반 발짝씩 앞으로 갈수록 인생을 더욱 자유롭게 당당하게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방금 틀렸던 동작에 마음두지 않고 천천히 이렇게 앞으로 전진해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행복해졌고 나를 불행하게 했던 사람들의 행복까지도 진심으로 빌어주고 드디어 내 마음은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여덟단어>에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 인게 인생이더라. 살다 보면 왜 그 순간이 기억나는지 모르겠는데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고, 중요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별로 중요치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중략

 

내가 어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면 나의 삶은 의미 있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고 내가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나의 삶은 의미 없는 순간의 합이 되는 것이에요.

 

 

 

좌념하는 중에는 잊고 있던 과거의 수 많은 생각들이 고요한 정신을 방해하며 들어온다. 그런 순간들이 왜 기억나는지도 모르고 또 생각나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인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부처가 수행했던 것처럼 기억에 집착하지 않고 나의 기준점에 집중하니 파도처럼 일던 생각들도 점차 고요해지며 명상에 몰입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행복감이 마음 깊이 차올랐다. 의미 없는 것들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수행이 끝나던 마지막날 11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같이 수행을 끝까지 마친 법우님들의 설레이는 표정들. 기대감. 행복한 얼굴들은 태어나 처음 본 11일의 태양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그 풍경의 색, 차가운 공기, 마른 잔디 냄새, 우리를 위해 정성껏 끓여주신 어묵국과 라면의 맛, 강아지들이 누군가 벗은 장갑을 물고 뛰던 소리들은 아마 오래도록 의미있게 가슴에 남아 있을 것 같다.

 

 

 

 

호학심사.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이 말에서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심사입니다. 너무 많이 보려하지 말고, 본것들을 소화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피천득 선생이 딸에게 이른 말처럼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는 삶.

어느 책에서 참된 지혜는 모든 것을 다 해 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길거리의 풀 한 포기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아무 생각없이 먹는 간장게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 본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삶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때 만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경구들이 문자에서 내 삶에 제대로 깊이 관념으로 박히기까지 참 멀리 돌아왔다 싶다. 또 이제라도 깨달아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앞으로 내 인생은 이런 깨달음 있는 사람들과 함께 찬란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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