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세월을 끼적거림

돈벌기의 시초

블루스타킹♪2016. 7. 16. 14:30


가끔 누가 묻는다.

왜 글쓰는 것 그만두고 돈벌기를 시작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요.

그네들이 원하는 상투적인 대답을 해주면 아,역시 라는 표정, 내가 알고 있는 믿음을 확인받았다는 표정을 보여준다.



헌데 내가 본격적 사회적 노동, 그러니까 입에 풀칠하기 위한 돈벌이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한문장으로 표현되기는 좀 부족한 것 같다.
표면적인 이유는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꽤 오랫동안 이어진 탓이다. 종일 밑빠지게 일해서 한달만에 목돈을 쥐는 월급쟁이 생활은, 정신노동만 새가 빠지게 하고 푼돈 만지기도 어려운 시절보다 훨씬 달콤했다. 그러나 달콤하다고 디저트를 삼시세끼 먹을 수 없듯이 그 이유 하나는 개고생을 꾹 참게하는 동력이 되지는 않았다.


도서관에 앉아 줄창 읽고 쓰던 시절. 88만원 세대라며 청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비관할때, 같이 욕하면서 헬조선을 외치다가 문득
난 88만원도 못번다는 것을 깨닫고는
헬조선 외칠 자격도 없는 불가촉천민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불가촉천민이 쓴 글은 88만원세대도 밥버러지라고 외면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88만원 세대 안에 안착해서 같이 기성세대를 시팔저팔 좆같다고 욕하고 싶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욕할 시간이 없어졌다. 나는 돈버는 벙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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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끼적거림

비밀은 없다, 2016 마지막 대사.

블루스타킹♪2016. 7. 16. 08:08

 

연홍(손예진)이 묻는다.

 

우리딸이, 지엄마는 좋다하디?

 

 

 

 

내 귀가 듣고싶은대로 들었던건지.

울먹이는 소녀가 손예진한테 대답하는 말을 나는 이렇게 들었다.

 

 

멍청하다 그랬어요. 멍청해서 같이 조져야한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씨네21 리뷰를 읽다가 내가 완전히 잘못들었음을 알고 영화를 다시 돌려봤다.

마지막 대사는 정확히 이렇다.

 

 

 

멍청하다그랬어여.. 엄마는 멍청하다고... 흐어어ㅓㅇ. 그래서 지가 지켜줘야된다 그랬어여. 어어어끄어ㅠ

 

 

 

 

 

 

의미가 완전히 상반되는데 내가 처음 잘못들었던 대사가

훨씬 마음에 든다.


이것봐 난 이런 모성애를 가진 엄마야 

딸아 내가 다 복수해줬다 

득의양양한 엄마라는 성전이 깨부숴지고야마는,

그리하여 허울좋은 가족이 해체되고,

모녀간 심정적 이별을 해서,

소녀가 어른 여자로- 엄마가 가족의 수식어를 뗀 한 여자로- 

성장하는 결말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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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세월을 끼적거림

악몽

블루스타킹♪2016. 7. 15. 10:09

 

 

 

줄곧 같은 악몽을 꾼다. 얼굴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쫓기는 꿈. 평범한 꿈을 꾸다가도 느낌이 싸해서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얼굴이 지워진 그가 쫓아오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내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헉헉대면서 뛰고 또 숨었다. 제대로 도망가서 남자를 따돌리는 일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코 앞까지 그림자가 다가와 거의 들킬만한 순간에 진저리를 치며 잠에서 깨면 어찌나 몸에 힘을 빡 주고 있는지, 땀은 또 어찌나 쏟고 있는지. 꿈이었다 하는 안도감은 금세 사그라들고 짜증이 밀려왔다. 이마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를 거칠게 쳐내며 일어났다.

 

 

꿈 속 내내 그토록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뛰어다녔으면서도 깨어나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굳은 근육을 꼼지락거리며 펴줬다.  어디론가 전화해서

 

나 지금 엄청 무섭고 짜증이 난다! 

 

고 알려서 푸르스름한 새벽의 산통을 깨고도 싶었다.

숨소리도 좀 고르게 되고 어둠에 눈이 적응이 돼서 시계를 보았다. 애매한 시간. 일어나기에는 많이 이르고 다시 자기엔 촉박한 시간인 것은 늘 변함이 없다. 다시 자면 같은 꿈을 이어 꾸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출근해서 고통스럽게 졸린게 더 무서웠으므로 억지로 비척비척 젖은 잠자리로 다시 들어갔다. 사회계약관계로 묶여있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에는 절대로 졸린 머리를 푹신한 무엇에 댈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비참한 것은 악몽보다 더 두려운 공포이다. 하루종일 손을 쓰는 일을 하느라 등 근육이 항상 아프다. 앉아서 혹은 서서 졸다보면 근육이 더 많이 아프다. 고통스러움이 예상되면 그것도 공포스럽다. 

 

넌 참 무서운 것도 많다

 

무심히 던진 애인의 말이 떠올랐다가 눅진하게 베갯잎 사이로 사라진다.

아침햇빛이 야금야금 창문을 물들이고 있는 것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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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끼적거림이 누군가에겐 피안의 세계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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