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을 끼적거림

필사의 즐거움

블루스타킹♪2017. 2. 8. 11:58

 

 

요즘 짬짬이 만년필로 제가 좋아하는 미드 대본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필사라는 것은 남이 쓴 글을 그대로 종이에 베껴 적는 것을 말하는데,
학부시절에 소설이나 시로 해보다가 금방 지루해지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어공부를 하다가 스스로 문장만드는데 자꾸 덜걱거리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잘된 문장을 통으로 외우면 좋겠지만.. 그러기 힘들어 책을 필사하기로 정했습니다.
이왕이면 대화가 많고 제가 좋아하는 대본이면 더 좋을 거 같았죠.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만년필도 ​구입하고 노트에 쓱쓱 써내려가는데
쓰는 손맛이랄까 행복함이 느껴지더군요. 오랜만에 이렇게 손으로 길게 글씨를 써​보는 것 같습니다.

대개 공부 못하는 애들이 시험기간에 교과서 읽다가 어떤 작품에 꽂히거나
문구류에 집착하는데, 제가 딱 그런 부류였어요.
이번에도 역시 공부보다는 손에 잡히는 만년필 그립과 사각이는 필기감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공무원시험공부하는 오래된 친구를 서점에서 만나기로 하여 만났습니다.
저는 만년필 잉크를 보는척 고가의 몽블랑 만년필들에 눈길을 주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작년쯤 제가 파버카스텔 연필 한다스를 사줬었는데 필기감이 너무 좋다고 또 낱 연필을 구매하였고
깎는 손맛이 좋은 작은 연필깎이를 또 샀습니다.
독서실 휴게실에서 연필 한뭉텅이씩 정성스럽게 깎고 있으면 사람들이 저 ​덕후는 뭐지.. 하고 쳐다본다네요.
다른 친구들은 만나면 쇼핑다니고 그러던데 저희는 문구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휴, 그래도 문구덕후치고 나쁜사람 없다니 그 말로 위안 삼아봅니다.


오늘도 스테들러펜으로 A4크기의 가죽다이어리에 뽀득소리나게 하루일과를 적습니다.
남자친구가 준 파카 ​수성펜으로는 편지 쓰기가 좋습니다. 생각보다 글씨가 미끄러지듯 먼저 달려갑니다.
글씨를 쓰는 일은 수양하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훨씬 더 쾌락​적이죠.
종이와 펜과 그것을 쥐고 있는 손이 같이 협업하는 과정입니다.
미끄러지기도 하고 꺾고 멈추고, 망설이고, 다시 옆으로, 아래로 나아갑니다.
펜에 따라서, 종이에 따라서, 또 생각에 따라서 그날 그날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필사의 장점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쓰는 재미가 있다는 것, 그게 제게 제일 매력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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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끼적거림

퇴근, 헌옷수거함

블루스타킹♪2016. 7. 17. 23:14



퇴근하고 집 앞 대문 앞에서 열쇠를 꽂기 전에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습관이 있다. 혼자 살게 된 후로 자연스레 생긴 버릇이다.  여자가 혼자 대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갈때 지나가는 남자들 중 너무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눈이 마주쳐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말그대로 빤.히. 고개가 돌아갈때까지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꽤 있기도 해서 신경이 톡톡히 쓰이는 편이다.

어쨋든 토요일도 어김없이 열쇠를 꽂으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또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여자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대문을 손으로 잡고 있었고, 그 여자는 헌옷수거함에 팔이 쑥 들어가 있었다. 눈이 마주친 것이 마치 불에 데인 것마냥 화들짝 놀라 팔을 쑥 빼는 여자를 보고는 나도 왠지 목격한 자체가 죄송한 일인 것처럼 열쇠를 서둘러 돌리고 후루룩 집에 들어왔다.

그 헌옷수거함은 내가 미니멀리즘에 빠지면서 정리한 많은 옷들을 버린 곳이다.

나는 내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그 여자를 상상해봤다. 그 옷을 입고 헌옷을 또 주우러 다니고 무료급식소 같은데서 밥을 먹고, 뒷산에 작은 천막집에서 바람과 밤이슬을 피해 잠이 드는 그녀 모습을.
왠지모를 연대감같은게 느껴진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때때로 두리번거리고 조심성 많은 길고양이 같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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